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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행위 Activity of Walking

심리지리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걷는 행위에 있다. 이는 방랑자wanderer, 산책자stroller, 산보객flâneur, 스토커stalker 등 다양한 이름의 옷을 걸치고 등장한다. 드 퀸시의 야간 탐험으로 부터 브레통Breton과 아라공Aragon의 초현실적 방랑까지, 상황주의 운동의 표류dèrive부터 이언 싱클레어의 영웅적인 장거리여행까지, 걷는 행위는 언제나 심리지리학의 중심에 있었다. 걷는다는 것은 지극히 도시적인 사건이다. 도시가 점점 더 보행자에게 배타적인 환경이 되어갈 수록 걷기는 그 자체로 전복적 행위가 된다. 걷기는 현대 도시의 정신성과 대척점에 존재한다. 보행자는 걸으면서 빠르고 쉽게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 보행자 눈높이의 시점 또한 걷기만이 가진 매력이다. 정해진 경로를 거스른다. 변방을 탐험한다. 잊혀진 영역으로 여행한다. 거주자는 보지 못하는 것을 산책자는 발견해낸다. 이처럼 걷는 자는 도시의 상투적인 겉모습에 도전한다.

심리지리학이란? Psychogeography?

심리지리학(psychogeography)은 1950년대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의 기 드보르가 처음 사용한 용어다. 드보르는 자본주의가 근대 도시의 표면을 매혹적으로 장식하는 동안 도시 속을 살아가는 거주자들은 그 반짝거리는 스펙터클 너머에서 권태를 경험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도시를 경험하는 주체가 아닌, 도시를 개발한 주체의 의도에 의해 수동적으로 도시를 살아가게 되는 이 권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것이 상황주의의 고민이었다. 드보르는 권태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심리지리학을 제안한다. 심리지리학은 용어의 합성 어원 심리학+지리학에서 추측할 수 있듯,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주고받는 정서적인 영역에 대한 연구이다. 연구하는 방법은? 걷기다. 도시를 설계한 목적에서 벗어나 임의의 방식으로 지도 밖을 걷는 행위는 그 자체로 도시 개발 주체와 정부의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된다. 급진적 정치 노선을 걸었던 상황주의는 도시를 개혁하기 위한 수단으로 심리지리학을 사용했다. 역설적이게도 이 운동은 걷기라는 실천적 영역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임에도 불구하고 점점 이론적 강령이 되어가면서 실천적 힘을 잃고 상황주의는 막을 내리게 된다.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심리지리학적 걷는 행위 속에 담긴 전복적인 정신은 남아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현대 대도시의 재개발 과정에서 사회 문제가 불거지면서 유럽에서는 다시 한번 심리지리학 열풍이 불었고 많은 시각예술가와 문학가들이 유행처럼 이 용어를 사용했다. 멀린 커벌리의 『심리지리학』은 이러한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으로 2008년에 발간된 책이다. 현대 심리지리학의 부활은 어디에 근원이 있는지 추적한다. 커벌리는 런던을 배경으로하는 소설을 재발견하는 아카이브 형식의 책을 저술하기도 한 런던 기반의 작가다. 그의 이러한 이력은 자연스럽게 프랑스 파리 원산지의 심리지리학을 어떻게든 영국산, 특히 런던으로 불러오는 시도로까지 이어진다.

이 책은 195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한 기 드보르의 심리지리학 이전에 이미 심리지리학적 정신이 면면히 존재했 심리지리학적 예표가 될 만한 작품들로 그 기원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커벌리는 소설의 기원이라고도 불리는 다니엘 드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심리지리학적 소설의 원형으로 본다. 그 뒤를 이어 윌리엄 블레이크의 운문집 『런던』, 토머스 드 퀸시의 『어느 영국인 아편 중독자의 고백』,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아서 마켄의 『산책의 기술』, 알프레드 왓킨스의 『고대의 일직선 길』 등을 차례로 다루며 런던을 배경으로 한 심리지리학적 기록들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소개한다.

커벌리는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 『군중 속의 남자』를 런던과 파리를 잇는 가교로 꼽는다. 이는 산보객의 기원과 관련이 있는데,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보들레르와 벤야민 모두 산보객의 문학적 개념을 포의 이 단편에서 찾기때문이다. 완벽한 산보자, 정열적인 관찰자인 이 군중 속의 개인은 언제나 집 밖에 있으면서도 어디서든지 자신의 집에 있는 것처럼 느끼고, 세계를 바라보고 세계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세계로부터 숨어있는 자이다. 런던의 거리를 걷는 이 군중 속의 개인은 영국 해협을 건너 파리의 아케이드를 걷는 산보객으로 탈바꿈한다.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지나 문자주의 인터네셔널, 전 상황주의 운동을 거쳐 기 드보르의 본론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커벌리의 관점이 강하게 배여있는 역사 서술이다.

19세기 파리를 지나 현대 런던에서 부활한 현대 심리지리학은 소설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도시는 픽션의 주요한 근거를 제공하는 소재가 되어 적극적으로 작품의 일부가 된다. 커벌리의 이러한 해석이 그의 문학가로서의 배경에 자연스럽게 기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시로 다루고 있는 작업들도 문학 중심이다. 시각예술가가 썼다면 달랐을 것이다. 여행 가방 크기의 얼음덩어리를 끌고 얼음이 모두 녹아 없어질 때까지 도시를 걷는 과정을 비디오에 담은 프란시스 알리스 Francis Alÿs, 잔디와 들판에 사람들의 발자국이 중첩되어 생기는 의도치 않은 지름길을 수집하여 도시와 자연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는 파웰 알타머 Pawel Althamer, 4 층 건물 높이에 긴 낚시줄을 설치하고 건물과 건물을 연결한 낚시줄들이 모여 지도 상에 커다란 원을 그리게 만드는 마크 월링어 Mark Wallinger 등 커벌리가 현대 심리지리학의 실천 장에서 다루는 영화 매체 이외에도 조각과 공공미술에이르기까지 재미있는 심리지리학적 작업들의 예는 많이 있다.

서울할머니는 논의의 배경을 런던,파리에서 서울로 옮기고 심리지리학적 실천의 장르를 문학에서 시각예술로 확대하여 다양한 실천적 사례를 모으고 있다. 도시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도시 거주민들이 경험하는 이야기의 총합이다. 그 이야기를 담는 기록의 그릇은 각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사진으로, 영상으로, 글로, 그림으로, 책으로 기록하고 있다. 아직까지 기성 매체의 그릇에는 자주 담기지 않는 것 같다. 심리지리학적 기록의 출발점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계기에서 시작되기때문일 것이다.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의 기록으로서의 도시가 기성 자본의 요구를 담보하지 못할 것이므로. 하지만 나는 독립출판과 비 상업적 예술의 영역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심리지리학적 도시 기록의 움직임이 이미 아래로부터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믿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응축된 담론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동시대의 멋진 심리지리학자들에 대한 소개를 시작한다.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Seoul Arcade Project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문학을 떠올리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떠오른다.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 모티프를 얻은 독특한 서울 탐방기이다. 80년 전 경성의  ‘거리 산책자구보 씨가 2013년 서울 거리에 등장한다. 소설과 대중가요, 문화 텍스트를 통해 서울의 일상을 탐색한다. 벤야민식 도시 읽기의 서울판이다.

Seoul Arcade Project discovers thicks and thins of seventy-years-ago Seoul. The well known main character of a novel Day of Writer Gubo revive in today's Seoul street. The author covers cultural texts from lyrics to literature to explore everyday life of Seoul.

걷기의 역사 The History of Walking

레베카 솔닛은 본문 중에서 산보객에 대해 이렇게 일갈한다. "산보객에게 단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 사람은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하나의 타입, 하나의 이상적인 문학적 인물로써만 존재했다… 누구도 산보객의 개념을 실현한 적이 없지만 모든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든 산보객스러움과 맞닿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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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신 4 Ob.scene 4

걷기와 관련된 짧은 글의 모음집이다. 걷는 행위를 통해 자유롭게 도시를 경험하는 표류의 기법을 디자인의 한 요소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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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llection of short stories about walking. The activity of walking reflects on the editorial design in this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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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 프로젝트 Arcade Project

벤야민의 미완성 대작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19세기 파리 일상에 대한 분절된 단상을 제공한다. 당대 도시의 하이라이트였던 아케이드를 둘러싸고 있는 화려한 유리창에서 제목을 따온다. 군중은 산보객을 유혹하는 판타스마고리아로써의 익숙한 도시 뒤의 베일이다. 그 속에서 도시는 이제 풍경이고 방이다. 그리고 이 두가지 모두 백화점의 구조에 들어간다. 산보flânerie 는 그 자체로 물건을 판매하는 데 이용된다. 백화점은 산보객의 최종 종착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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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생활의 화가 Le Peintre de la vie moderne

보들레르의 『현대 생활의 화가』 중 발췌해본다. "새가 공중에서 날아다니고 물고기가 물 속에서 노는 것처럼 그의 활동 영역은 군중이다. 그의 정열, 그리고 그의 직업은 군중과 결혼하는 것이다. 완벽한 산보자, 정열적인 관찰자에게 있어서, 숫자와 물결침, 움직임 그리고 사라짐과 무한 속에 자신이 거주할 집을 결정하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다. 자신의 집 밖에 있으면서 어디서든지 자신의 집처럼 느끼는 것, 세계를 바라보고 세계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세계로부터 숨어 있는 것"

보들레르에게 파리는 거리를 걸음으로써 읽어야할 책이다. 런던에는 여전히 미로같은 중세적인 지형도가 온전히 남아있다. 파리는 오스망 남작의 대대적인 구조변경으로 대중과 그들이 거주하는 도시 사이의 관계가 단절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산보객은 위협을 받게되고 보들레르는 이상화된 인물과 이상화된 도시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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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속의 남자 The Man of The Crowd

보들레르와 벤야민 모두 산보객의 문학적 개념을 에드거 앤런 포의 단편에서 찾았다. 1840년에 쓰여진 <군중 속의 남자>는 역설적이게도 런던의 거리로 우리를 데려다 준다. 이 작품은 현대 도시의 상징으로서 도시 속에서 이동하는 것에 도취되어 객관적인 관찰자 역할을 하는 군중을 사용한 최초의 예시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미 여기에서 현대 도시의 영웅인 산보객은 그 종말을 암시한다. 애초부터 산보객은 도시 생활의 즐거움을을 분명히 보여주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인물로서 한가한 보행이 이제는 잉여의 것이 되어버리는 위협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사이의 아방가르드의 출현, 그리고 특별히 초현실주의의 발생과 함께 산보객의 역할은 겨우 구조되었고 그는 파리의 거리를 유랑하는 정당한 지위를 복개하게 된다초현실주의는 도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열려있고 훗날 상황주의의 특징이 될 전복적이고 유희적인 실천들에 연관된 새로운 유형의 방랑자에 대한 해석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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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an unnamed illness, the narrator sits in a coffee shop in London. Fascinated by the crowd outside the window, he considers how isolated people think they are, despite "the very denseness of the company around". He takes time to categorise the different types of people he sees. As evening falls, the narrator focuses on "a decrepit old man, some sixty-five or seventy years of age," whose face has a peculiar idiosyncrasy, and whose body "was short in stature, very thin, and apparently very feeble" wearing filthy, ragged clothes of a "beautiful texture". The narrator dashes out of the coffee shop to follow the man from afar. The man leads the narrator through bazaars and shops, buying nothing, and into a poorer part of the city, then back into "the heart of the mighty London". This chase lasts through the evening and into the next day. Finally, exhausted, the narrator stands in front of the man, who still does not notice him. The narrator concludes the man is "the type and genius of deep crime" due to his inscrutability and inability to leave the crowds of London.